1. 요약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욕구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더불어 안전(안정)에의 욕구가 매우 강하다고 하십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들의 삶은 질병으로/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졌습니다. 과연 우리 삶의 ‘안정’은 누가 줄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안정인지 생각해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매우 불안정한 포로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수십 년을 포로로 살며 신앙 공동체도 모두 흩어지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은 시기였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고 하나님이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계속 말씀하고 계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소망 없이 다 흩어진 마른 뼈들에게 말씀하셔서,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게 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사람이 되게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큰 군대가 되게 하셔서 고국으로 돌아갈 사명을 주십니다.
2. 적용
2023년도 새해 교회 표어를 보며 조금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정을 넘어 헌신으로…’ 이것이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 문장인가? 안정과 헌신이 연관 관계가 있는 단어들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관이 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과연 헌신하면 정말 안정이 보장되는가.. 어제 토비새 때 미리 나눠주신 주일설교 교안을 잠시 보며 또 한 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정을 넘어 헌신으로’라는 주제와 에스겔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는 본문은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새해를 맞이하여 이런저런 결심/다짐을 하며 첫 주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벌써 마음에 낙심되는 일,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상황들이 많이 나아지고 안정되는가 싶으면, 어느덧 또 상황은 다시 불안정해지고, 그래서 제 마음을 흔들고 어지럽힙니다. 나의 상황, 나의 마음 상태를 바라보면 ‘안정’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누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감은, 제가 ‘바라는 모습’과 ‘실제 현실’ 간의 차이로 인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마른 뼈들이 서로 붙어 생기를 얻고 사람의 형상이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고국에 돌아가는 사명을 받는 군대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봅니다. 저에게도 하나님은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성실하게 가정을, 남편과 자녀, 부모님을 잘 섬기라고 하십니다. 교회 공동체 중고등부와 다락방을 열심히 섬기고, 귀하게 붙여주신 동역자들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실하게 직장 일을 감당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을 아직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른 뼈들에게 또한 저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결과를 책임지라고 하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맡기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되, 그로 인한 결과나 열매, 이런저런 상황들을 책임지라고 하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집중하여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면, 그것으로 제 삶은/제 마음은 안정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책임지려 할 때, 제 마음은 불안정해지고 낙심하고 힘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은 하나님이 책임지심을 기억합니다. 2023년에 저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되, 그로 인한 결과나 열매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고, 그것으로 제가 불안해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마른 뼈들을 살리시되 그냥 스스로 알아서 살라고 하지 않으시고, 분명한 삶의 목표/사명을 주시고, 그들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찬양: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https://www.youtube.com/watch?v=YXKra2HDWQ4&list=RDYXKra2HDWQ4&start_radio=1
1. 요약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욕구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더불어 안전(안정)에의 욕구가 매우 강하다고 하십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들의 삶은 질병으로/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졌습니다. 과연 우리 삶의 ‘안정’은 누가 줄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안정인지 생각해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매우 불안정한 포로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수십 년을 포로로 살며 신앙 공동체도 모두 흩어지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은 시기였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고 하나님이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계속 말씀하고 계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소망 없이 다 흩어진 마른 뼈들에게 말씀하셔서,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게 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사람이 되게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큰 군대가 되게 하셔서 고국으로 돌아갈 사명을 주십니다.
2. 적용
2023년도 새해 교회 표어를 보며 조금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정을 넘어 헌신으로…’ 이것이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 문장인가? 안정과 헌신이 연관 관계가 있는 단어들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관이 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과연 헌신하면 정말 안정이 보장되는가.. 어제 토비새 때 미리 나눠주신 주일설교 교안을 잠시 보며 또 한 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정을 넘어 헌신으로’라는 주제와 에스겔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는 본문은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새해를 맞이하여 이런저런 결심/다짐을 하며 첫 주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벌써 마음에 낙심되는 일,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상황들이 많이 나아지고 안정되는가 싶으면, 어느덧 또 상황은 다시 불안정해지고, 그래서 제 마음을 흔들고 어지럽힙니다. 나의 상황, 나의 마음 상태를 바라보면 ‘안정’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누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감은, 제가 ‘바라는 모습’과 ‘실제 현실’ 간의 차이로 인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마른 뼈들이 서로 붙어 생기를 얻고 사람의 형상이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고국에 돌아가는 사명을 받는 군대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봅니다. 저에게도 하나님은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성실하게 가정을, 남편과 자녀, 부모님을 잘 섬기라고 하십니다. 교회 공동체 중고등부와 다락방을 열심히 섬기고, 귀하게 붙여주신 동역자들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실하게 직장 일을 감당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을 아직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른 뼈들에게 또한 저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결과를 책임지라고 하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맡기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되, 그로 인한 결과나 열매, 이런저런 상황들을 책임지라고 하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집중하여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면, 그것으로 제 삶은/제 마음은 안정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책임지려 할 때, 제 마음은 불안정해지고 낙심하고 힘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은 하나님이 책임지심을 기억합니다. 2023년에 저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되, 그로 인한 결과나 열매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고, 그것으로 제가 불안해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마른 뼈들을 살리시되 그냥 스스로 알아서 살라고 하지 않으시고, 분명한 삶의 목표/사명을 주시고, 그들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찬양: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https://www.youtube.com/watch?v=YXKra2HDWQ4&list=RDYXKra2HDWQ4&start_radio=1